인도의 곤드 민화처럼 강렬하고, 보는 이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그림이 있을까?
오늘은 이야기와 상상력 그리고 생명력이 넘치는 민화에 대해서 알아보자!
신화의 힘은 무엇일까? ft. 🌳🐟🌕
최근 창극 <나무, 물고기, 달>이 국립극장에 개막하였다.
수미산의 큰 나무를 형상화한 무대를 중심으로 공연이 펼쳐지며,
관객들은 한순간에 신화 속 긴 여정에 빠져든다.
음악과 연출이 참 인상적이었고 서사적으로는 ‘신화’의 본질을 정말 잘 파악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인류의 ‘원초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에는 ‘신화’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한국의 오늘이 설화와 불교 이미지,
중국의 월하노인 설화 그리고 인도 신화의 요소들이 등장한다.
연출가님이 인도 타밀 나두에서 지내면서 들었던 이야기나 인도의 ‘소원나무'(Kalpa Taru) 가 이 창극이 만들어지는 하나의 영감이었는데,
극에서도 소원나무나 수미산에 사는 인도 신, 민화에서 나온 것 같은 사슴나무가 생생히 살아있다.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의 곤드 민화도 작품을 소개하는 큰 역할을 한다.
극에서 등장하는 나무와 물고기와 달, 사슴나무가 하나가 되어 인상적인데,
극의 내용을 한번에 설명할 뿐만 아니라
곤드 민화의 원초적 느낌이나 서사성을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곤드 민화에서는 자연이 주인공이며, 배치와 구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나무, 물고기, 달> 역시 곤드 민화처럼 음악과 환상적인 세계
그리고 서사가 하나로 배치되어 있었다.
곤드 민화, ‘원주민’의 그림에서 세계적인 ‘인도’ 민화로 거듭나기까지
곤드 민화는 인도의 곤드 원주민들의 민화로,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주로 담으며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큰 벽에 나무, 뱀, 새, 사슴, 인간 등이 어우려져 있으며
그림은 밑그림 없이 선과 원을 그리고 바로 채색에 들어간다.
눈은 숨을 불어넣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그리고 칠한다고 한다.
곤드 민화는 전통적으로 ‘제의적인 기능’을 지녀 축제날에
신앙이나 이야기를 벽이나 바닥에 표현하는 그림이었다.
반면 현재 곤드 민화는 전시회에 떳떳하게 걸려 있고 세계적인 위상이 있는 전통 예술이다.
무려 30년 전까지만 해도 종이에 그려지지 않았고 인도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간극이 느껴진다.
곤드 민화가 잘 알려지지 않은 민속예술에서 인도를 대표하는 전통 예술이자
다양한 원주민 예술가들을 배출하게 된 것은
1980년대 곤드 예술가였던 장가르 씽 샴(Jangarh Singh Shyam)의 역할이 크다.
당시 그가 살던 지역 미술관에서 지역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때 마침 장가르 샴이 조명 받았다.
몇년이 지나지 않아 장가르 샴의 작품들은 국내적으로나 국외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그는 민화를 종이나 거대한 벽에서 펼쳤고,
민요와 전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등 기존 전통 민화와 색다른 시도를 선보였다.
이전에 곤드 부족들의 예술을 일컫는 이름이 없었고
현대 곤드 예술의 선구자로 장가르 샴의 비중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곤드 예술은 장가르 깔람(Jangarh Kalam, 여기서 깔람은 펜을 의미)이라고 불린다.
장가르 싱 샴은 때 아닌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의 업적으로 곤드 예술과 예술가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민화가 더욱 활발히 제작되며 ‘문화 유산’이라는 인지도가 생겼고
민화 제작자들은 ‘예술가’로 인정을 받았다.
이전과 달리 민속 예술가들에 대한 보호조치와 홍보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단체들도 늘었다.
또, 특정 커뮤니티의 일상을 표현하는 폐쇄적인 그림에서 국내적으로,
국외적으로 보편성을 지닌 예술 작품이 된 것이다.
현대의 곤드 민화
오늘날의 곤드 민화는 소재나 재료의 방면에서 더욱 다양해졌다.
한 곤드 예술가의 말처럼 예술가마다 겹치는 그림이나 이미지가 하나도 없다.
민화는 한 커뮤니티의 공통적인 이야기나 가치관을 배경으로하지만
각 아티스트마다 시그니처나 스타일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요즘 곤드 민화를 보면 전통적인 생명의 이야기에서부터
현대 도시의 모습을 담는 것까지 무한한 상상력이 화면에서 생생히 펼쳐진다.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적인 이미지인
‘거대한 나무’를 중심으로 다양한 모습들이 펼쳐지고 있는데,
내용은 전통적이고 트라이벌(tribal)한 내용에서 벗어나 현대 도시의 모습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아기자기한 배치나 작품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은 여전하며
이 역시 곤드 예술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전통 예술이 현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그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특히 주류 예술이 아닌 원주민 예술이나 민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체로 주류 예술을 다루는 미술관에서 전시가 되어 보편성을 높이거나, 친숙하게 상품화가 되어 여기저기서 접하는 것이다.
곤드 민화도 더 이상 이야기를 전달하고 계승하는 맥락을 지니지 않고 전시되고 옷에 그려져 입히고 소유되는 대상이 된 것이다.
물론, 일반인들도 곤드 민화를 그리는 법을 배우고 (유튜브에 튜토리얼이 많아 직접 그릴 수도 있다)
현대 예술가들도 이를 예술 작품에 담고 있다. 더욱 보편화가 된 것이다.
예술가들이 예술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관람객들의 소비가 필요하지만
전통적인 의미나 맥락을 잃은 예술의 형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또한 사회적 소수자인 인도의 원주민 커뮤니티의 예술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인도 예술계에서도 꾸준히 고민하는 문제이다.
이런 고민들과 예술에 대한 존중, 계승이 앞으로의
곤드 민화를 더욱 다채롭고 생생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