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 인도-파키스탄 분단으로부터 듣는 여러 목소리>📖

” 분단의 고통과 슬픔은 국경에서 기념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 외의 그 어느 곳에서도 공개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백만 명이나 죽어갔을 텐데도 아무런 기념물 하나 없다.

이야기는 오로지 사람들 사이에 있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족이나 종교공동체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 핏줄에게만 말을 한다.” 

-2장 피-

분단의 비극, 멀지 않은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는 내가 2020년 읽었던 책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시 펼쳐볼 때마다 새로운 감흥이 일고, 인간에 내재된 폭력과 역사학자의 임무

그리고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이 예상보다 큰 울림을 줬던 이유는 인도-파키스탄의 분단이 한국의 분단과

유사한 ‘역사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의 중심에는 ‘종교 갈등’이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인도에서 최근 들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종교에 근거한 차별’이나 혐오 범죄가

분단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인도 현대인들은 어떤 평행선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인-파 분할 독립 *

1947년 8월 15일 인도의 독립과 함께,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할된다.

같은 시간 인도 북서부 펀잡 지역은  강간, 살인, 방화, 전염병 발발의 연속이었다.

수개월만에 1200만이 넘는 사람이 국경을 넘고, 100만이 죽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저자 우르와시 부딸리아는 분단 이후 파키스탄에 살고 있는 삼촌과 가족사를 추적하면서

분단이 사람들에게 강요한 ‘어려운 선택’의 순간들을 발견한다.

고향을 버리고 떠나 힘겹게 삶을 개척하거나, 남아서 개종하고 차별을 받거나.

피난길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고 살해와 방화, 강간, 공포의 연속이었다.

부딸리아는 페미니스트적 가치관과 서발턴 연구 방식으로 치열하게 인-파 분단의 전조,

과정 그리고 결과를 분석한다. 그리고 역사서에서 들려주지 않는 은밀한 가족사 진술을

시작으로 분단이 일으킬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비극을 서술한다.

저자는 구술과 더불어 사료와 기사, (납치여성을 추적하고 난민촌을 관리한) 구호재활부

인사 인터뷰를 첨부한다.  독자는 분단의 현장을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런 연구 방식은 저자가 ‘연구자의 윤리’와 ‘힌두-시크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한 증거이기도 하다.

아비규환 속에 여성이 있었다

“우리가 인-파 분단을 통해 보았던 폭력에 대한 신화는 그 폭력이 주로 남성적이라는 것이다.

종교공동체 사이에 분쟁이 벌어질 때 여성은 폭력의 피해자일 뿐 가해자나 주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에 관한 많은 부분은 우리가 폭력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방법에 달려 있다…”

-5장 명예-

인-파 분단이 궁금하고 당시 상황을 파악하고 싶은 독자라면 한번쯤은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를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은 숫자로 간과하기 쉬운 많은 목소리를 담고 있고

인터뷰에서 독자들은 무엇보다 아픔을 ‘치유’하려는 인간적 몸부림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

저자 우르와시 부딸리아는 책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망각과 가족들의 간섭 그리고 사회의 위계를 뚫고 진실을 찾는 것은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책이 담지 않는 ‘디테일’에서 우리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발견하고,

여기에 아이를 잃은 아픔이나 가족을 이야기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중요한 기여를 한다.

여성의 몸은 (저자가 비유했듯) 분단 시기에 ‘영토’ 같았다.

뺏고 버려지는 피해자이지만, 공동체 원리에 따라 스스로 순교를 선택한 사람도 있는 반면

납치를 당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거나

강간으로 가진 아이를 낙태하거나 버리기도 했다.

저자는 여성 외에도 분단을 살아남은 고아들이나 항상 인도사에서 외진 곳에 있었던

달리트의 목소리까지 담았다. ‘분단’하면 이념과 정치갈등을 떠올리지만

 죽음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난 자들에게는 이것이 물리적으로 다가오는 ‘폭력’일 뿐이다.

침묵의 무게

이 책에 구술되어 있는 사건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아프다.

근접한 과거의 폭력이 후대의 사람에게는 단순한 사건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

시간과 무관심에 의해 침묵으로 남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지,

그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있을지 고민하게 한다.

분단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책이나 정부, 정책의 분단은 까다로운 일이지만

그 땅에 살고 있어 정책의 결과를 정면으로 받고 살아야하는 사람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이 고통스런 일이다. 저자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기억과 역사적 유산에 대한 불편한 납득 아닐까

침묵을 선택하는 자들의 무게를 감히 상상하며, 평화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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