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트리방가처럼> 불균형 속 균형의 미학을 발견하다+인도 고전무용 오디시

인간의 움직임을 조금만 눈여겨본다면,

균형과 불균형한 동작으로 이뤄져있다는 것을 파악할 것이다.

균형과 대칭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고, 불균형의 불안정함은 어색함을 불러일으키거나

몸에 고통을 주기도 한다.

인간은 전통적으로 완벽한 균형과 비율에서 ‘미’를 찾았고

비대칭에서 ‘해방과 파격’을 찾았다.

고전무용은 전통적인 가치관과 문화에 기반하여 ‘아름다운’ 움직임을  채택,적용하는데

동작이나 기본 움직임에는 각 문화나 예술집단이 ‘대칭과 비대칭’에 대해 갖고 있는 가치관

역시 파악할 수 있다.

트리방가,
비대칭으로 대칭의 아름다움을 만들다.

대칭과 비대칭의 조형미에 대해

언급하자면, 

오디시(Odissi)의 기본동작 ‘트리방가/뜨리벙거’만큼 흥미로운 게 없다.

인도 오리사주의 고전무용인 오디시는 깊은 전통과 독특한 미학을 지닌 춤이다.

오디시가 다른 고전무용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점은 토르소를 좌우로 움직이고 비대칭적인 트리방가 자세로 우아한 조형미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트리방가는 몸의 세 부분:

무릎, 토르소, 머리가 살짝 굽어있는 동작이다.

불균형과 비대칭으로 완벽한 몸의 대칭을 만든 것인데,

불완전하다고 느껴지는 것으로 안정감과 조형미를 만들어냈다는 논리 자체가 무척 멋지다.

살짝 ‘밴드(bend)’된 자세가 인간의 몸에 녹아 있는 곡선의 미를 살리는 것이다.

실제로 무용가가 이 동작을 선보이고 이 동작에서 변형된 움직임들을 선보일 때

오디시의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잘 살아난다.

트리방가는 인도 고전예술에 자주 등장하는 자세이며, 상당히 감각적이다.

몸이 지닌 곡선과 율동감을 뚜렷이 드러내며, 조형미와 우아함이 잘 어우러진

오디시에서 진면목을 발휘하는 자세이다.

트리방가는 한국 불상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살짝 골반을 옆으로 밀고 가슴을 반대로 민 불상들에서

곡선의 조형미를 느낀다면, 거기서 트리방가를 발견한 것이다.

주인공 아누가 사랑하는 오디시와 그녀의 트리방가

<트리방가>가 넷플릭스에서 나온다는 소식은 인스타 ‘오디시’ 커뮤니티에서 처음 알게 됐는데,

모두 오디시의 가장 기초 자세 트리방가를 제목으로,

발리우드 배우 까졸(Kajol)이 오디시 댄서로 나온다는 점에 무척 흥분했다.

나는 이외에도 여성감독과 제작진, 배우가 중심이 된 영화라는 점이 기대되었다.

인도 내에서 지속적으로 여성중심서사와 여성중심미디어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는 때에

넷플릭스가 나서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이 작품은 주인공 아누를 중심으로, 아누의 어머니인 나얀과 딸 마샤,

삼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이 펼쳐진다.

아누가 오디시 공연을 하는 날, 유명한 작가이자 아누의 어머니가 쓰러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누는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재탐색한다.

작품은 크게 두가지를 중점적으로 탐구한다.

첫째는 흠이 있지만 개성 강한 여성 캐릭터이다.

삼대의 여성 모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를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자신만의 삶’을 꿋꿋이 살아간다.  이런 서사는 참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정상’으로 규정하는 가족 형태가 아닌 모습을 보여주며 ‘비정상’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것은 애초에 캐릭터들이 완벽하거나 아름답지 않고 ‘인간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여성들이 마주치는 갈등과 어려운 선택을 다루는 것이다. 

진보적인 여성주의 성향의 할머니 ‘나얀’과 할머니에 반항하고 마샤를 홀로 길렀던 아누에 비해

‘마샤’는 전통적인 집안에서 평탄한 삶을 사는 것을 추구한다.

이 영화는 여성들이 특히 마주치는 어려운 선택의 순간들을 (육아나 커리어 등) 미묘하게

풀어냈고 이게 얼마나 (의도적이든 아니든)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강렬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의도나 메시지의 측면에서는 탁월하지만,

클라이막스에서 감정을 터뜨리고 서사를 풀어내는 부분은 빈약한 아쉬움이 있다.

삶을 춤💃 동작에 비유한다면

 

” 나얀은 아방가(Abhanga)야. 살짝 비뚤어져있어, 모든 천재들은 조금 비뚤어진데가 있으니까

우리 마샤는 싸머방가(Samabhanga),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지.

나는 비뚤어지고 이상하고 정신나갔지만 섹시한 트리방가(Tribhanga)”

-<인생은 트리방가처럼>-

우리네 삶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상’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평가된다.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어쩌다보니 ‘트리방가’처럼 이곳저곳 비틀린 모습이다.

마샤가 원하는 것처럼 삶은 써머방가처럼 온전하고 균형잡힐 수도 있지만,

우리네 삶은 트리방가처럼 비틀린 부분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갈지도 모른다.

삶이 왜곡되고 이상한 것 같아도 나름대로의 균형으로,

내 삶대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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