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인도의
오스카 진출작, <잘리까뚜Jallikattu>
예년 같았다면 오는 2월 둘째주에 아카데미 수상식이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수상식은 4월로 미뤄진 상태지만 여전히 후보작과 수상의 기대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20년 11월 인도에서는 아카데미 국제영화상부문에 선보일 영화로 <잘리까뚜>가 선정되었다.
이에 많은 영화팬이 큰 호응과 수상의 기대감을 보였으며
이번 선정에 대해서는 특히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우선, 인도가 영화 강국인데도 지금까지 아카데미에서는 유난히 실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스카 후보작에 오른 인도 영화는 1957년의 <마더 인디아Mother India>,
1988년의 <쌀람 봄베이!Salaam Bombay!> 그리고 2001년 아미르 칸이 주연하는
<라간Lagaan> 밖에 없다. 거의 20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국내에서 <잘리까뚜>가 세계 무대에서도 뒤치지 않을 경쟁력을 지녔다는 인식과 기대감이 크다.
또 다른 이유로는 2019년의 진출작인 <걸리 보이Gully Boy> 논란 때문이었다.
<걸리 보이>의 진출은 실망스럽고 적절하지 않다는 여론이 컸다.
애초에 표절 의혹이 컸고 백인 중심의 아카데미를 겨냥한 ‘슬럼가’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걸리보이>가 인도 힙합계의 모습이나 사회 고발을 다룬 점은
인상적인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아카데미가 지향하는 ‘예술성’이 있는 작품은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는 영화 <헬라로Hellaro>가 더욱 적절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번에는 인도 위원회가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세계 무대에서 멋진 활약을 보일 영화 <잘리까뚜>를 선정했다.
말라얄람 영화계의 자부심이자 독보적인 감독의 출현
케랄라의 말라얄람 영화 산업은 그동안 독자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말라얄람 영화는 다른 지역의 영화에서 찾기 힘든 일상의 주제나 감성을 담았고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다는 호평을 자주 받아왔다. 이와 더불어 열성적인 말라얄람 영화팬들과
영화에 대한 자부심 역시 영화산업의 개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였다.
영화에 열성과 관심이 가득한 지역과 대중영화부터 예술영화까지 포섭하는 영화계에서
감독 리조 조세 뻴리쎄리(Lijo Jose Pellissery, LJP) 같이
독특한 색채를 지닌 독립 영화 감독이 나온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LJP 감독은 2010년 영화 <나야깐Nayakan>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굉장히 다작을 하는 감독으로 매해 영화를 한 개씩 내놓는다고 봐도 되는데,
초반부 작품들은 평이 높거나, 예술성이 뛰어났는데도 대중적, 상업적 인기는 끌지 못했다.
하지만, 2013년의 <아멘Amen>이나 2017년의 <앙가말리 다이어리Angamaly Diaries>으로
대중적인 환영을 받기 시작했고 2018년의 <R.I.P, Ee.Ma.Yau>로 LJP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케랄라 주와 인도국제영화제(IFFI)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LJP 감독의 영화는 분위기가 참 독특하며, 이야기와 영상 그리고 음향이 같이 어우러져
관객이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또, 사건을 무심히 관찰하는게 아니라
그 분위기와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전율을 전달하는 정말 드문 영화다.
<잘리까뚜>는 흥미진진한 서사나 혼란과 폭력의 연출, 롱테이크가 돋보이는 작품이며,
‘역시 LJP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는 정육장에서 도망친 물소를 잡기 위해 온 마을이
사냥에 나서고, 소름끼치는 신경전과 경쟁 사이에서점차 동물이 되어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룬 것인데, 각본은 S. 하리쉬Hareesh,
R.자야꾸마르Jayakumar 가 맡았으며 하리쉬의 단편을 바탕으로 한다.
<잘리까뚜>는 개봉 당시 인도와 해외에서 큰 호평을 받았는데
현재는 아마존프라임에서 스트리밍 중이다. 2020년 11월 <잘리까뚜>의 오스카 진출이
확정되자 인도 내에서는 영화를 지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바로 아카데미 수상은 작품성 뿐만 아니라 인지도와 홍보의 영향도 크기 때문인데
언어는 더 이상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한계가 되지 않는다는 기대감과
영화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긍정적인 여론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잘리까뚜, 아드레날린 넘치는 연출 소름끼치는 음악
이 영화는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한다.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광기와 이미지가 생생하게 남는다.
‘우월’한 문명적 인간은 결국 ‘야만’적이고 추악한 본형태로 돌아오고
비선형적인 스토리라인은 시적이기까지 하다. 영화의 제목 ‘잘리까뚜’는 사실
타밀나두 주의 전통 투우축제인데, 참가자가 물소의 혹을 소가 멈출 때까지 잡는다.
마을 전체가 탐내는 식량인 소가 도망치자 마을의 불평등한 구조나 권력관계는 까발려지고
소를 잡으려는 집념은 점차 무시무시한 경쟁으로 변한다.
마을 남성들이 소를 잡으려는 행위가 현실’잘리까뚜’이기 때문에 적절한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결말에 소를 잡으려고 모두 진흙탕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선사시대 인류와 겹쳐지면서
어떤 승화가 느껴진다. 영화가 예측 불가능한 것도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하는 한 측면이지만
무엇보다 음향이 영화를 더욱 소름끼치게 만드는데 한 몫했다.
가장 아쉽게 느끼는 건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약 그랬다면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꼭 수상을 해야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LJP 의 행보는 어떻게 될지, <잘리까뚜>는 과연 오스카 심사를 통과하게 될지
모든 것이 궁금하다. 인도 내에서 그동안 발리우드의 빛에 가려진
몰리우드(Mollywood, 말라얄람 영화산업)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잘리까뚜>에 영화팬들이
환호하는 것으로 봤을 때, 인도 영화계와 팬들에게도 점차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로 작품이 소개될 수 있길 바라며,
2021년 흰소의 해에 소를 잡으려고 날뛰는, 피튀기는 스릴러 한 편은 어떤가?